lonely-flowing-spirit-1968 korean April 3, 2026

미술관 먼지와 기름의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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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림 한 점이 있다. 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매주 목요일마다 미술관에 가던 때 보았던 그림이다. 아마 잭슨 폴록의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확신은 없다—폭풍처럼 격렬하고 복잡하고 불안하면서도, 캔버스 오른쪽 윗부분에는 눈부신 햇빛 한 줄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적어도, 어린 날의 나는 그렇게 보았다. 미술관에는 늘 그 독특한 냄새가 있었다. 먼지와 기름이 섞인, 이름 붙일 수 없는 냄새. 그 냄새는 공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발소리를 삼켜버렸는데, 그 그림 앞 검은 가죽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두껍게 덧칠된 유화와 아크릴의 거친 붓질과 뿌림을 이해하려 애쓸 때, 그 냄새는 가장 짙게 느껴졌다.

모든 감각 중에서 후각이 기억과 가장 강하게 이어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얼마 전 뉴욕 현대미술관 3층에 서서 몇 발짝 떨어진 곳에 걸린 잭슨 폴록의 『넘버 31, 1950』 을 바라보던 중, 먼지와 기름의 희미한 미술관 냄새가 풍겨오자 내 안에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넓고 흰 복도를 따라 울려퍼지던 발소리, 어머니의 손을 꼭 쥘 때 팔을 타고 올라오던 온기, 그리고 손끝을 차갑게 하고 입술을 하얗게 질리게 하던 공포.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어머니를 잃는 것이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내 손을 놓고 전시실 벤치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화장실에 가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그 생각을 나는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어머니는 화장실에 자주 가셨는데, 적어도 당시 어린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늘 같은 순서였다. 우리는 손을 잡고 전시실을 거닐다가, 어머니가 조용히 벤치 앞에 멈춰 서서는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기다리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망설였고,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쥐어 주며 미소 지었다. 어머니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기운이 빠지고, 입술이 하얗게 질리고,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필사적으로 눈앞의 그림을 응시하며 양귀비 꽃밭이나 소용돌이치는 추상의 무늬 속에 빠져들려 애썼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봇물처럼 솟아오르는 눈물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정말 어머니가 영원히 떠나버린 것만 같던 바로 그 순간, 어머니가 돌아와 내 손을 꼭 쥐고 미소 지었다. 내 안의 공포 따위는 모른 채.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손을 그토록 잡고 싶어 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어머니 손바닥의 사랑스러운 주름 한 줄 한 줄, 내 손에 맞닿던 어머니 손가락의 감촉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다. 우리가 맞잡은 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줄이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사실 아무 데도 없었다. 우리 가족은 안정적이었고, 내가 아마 영향을 받았을 텔레비전 속 막장드라마 가족과는 달랐으며, 어머니는 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데 한 번도 주저한 적이 없었다. 불쑥 볼을 꼬집어주거나 이마에 입을 맞춰주는 것이든. 하지만 내 두려움은 사랑과 비합리가 얼마나 깊이 얽혀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세상의 모든 글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나는 자라고, 어머니는 늙어갔다. 어머니와 손을 잡고 목요일마다 미술관에 가서, 둘이서 몇 시간이고 그림을 바라보던 날들은 한 생보다 더 먼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지금 대학에 다니고, 어머니는 오로지 나만 생각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아오는 음성 메시지와 이메일에서 자랑스럽게, 끝없이 사랑을 선언하는 것을 보면 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그저 멋쩍어지고 만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할 수 있던 소년의 날들은 한 생보다 더 먼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지금 젊은 남자들이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진심은 아닌 나이, 호르몬과 자의식이 삶의 가장 순수한 것들을 가로막는 나이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나는 더없이 진지하게 어머니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결혼 같은 건 하고 싶지 않고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의 바랜 기억들은 모여 하나의 이상적인 여인상을 빚어낸다. 젊은 날의 어머니. 언제나 우아하고, 아름답고, 다정하면서도, 나를 키우는 데 모든 힘을 쏟아붓던 그 생기 가득한 모습. 오늘날 내가 이런 사람이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니는 목요일마다 미술관에 데려가 주었다. 한번은 내가 할로윈 복장을 마지막 순간에 바꾸는 바람에, 밤새도록 회색 쥐 복장을 손수 바느질해 주었다. 내 책꽂이를 늘 책으로 채워주었고, 너무 잘 먹여서 중학교 때 어느 날 문득 내가 통통해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 울자,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나를 안아주고는, 그 몇 킬로가 오히려 더 귀여워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술관 나들이는 학교와 친구들 때문에 뜸해졌고, 결국에는 완전히 멈추었다. 어머니의 손도 점점 덜 잡게 되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낡은 농구공의 거친 가죽이거나, 또래 여자아이의 향수 묻은 손이었다. 어머니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잊혔고, 주름진 손과 흰 복도와 추상화의 기억들은 깔끔하게 포장되어 마음속 먼지 쌓인 구석에 처박혔다. 그러다 바로 얼마 전, 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오가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잭슨 폴록의 『넘버 31, 1950』 앞에 서 있었다. 물감의 튀김과 붓자국과 거친 비말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먼지와 기름의 희미한 냄새가 풍겨왔다. 기운이 빠지고, 입술이 하얗게 질렸으며, 심장이 익숙한 공포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의 전화였다. 어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하셨지만, 어딘지 피곤해 보였다.

“엄마,” 내가 말했다. “나 오늘 미술관에 갔어.”

“어머, 기특하다! 우리 예전에 같이 가곤 했던 거 기억나?”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실에 앉아, 머리카락이 서서히 희어져가고, 손은 비어 있는.

“응, 기억나.”

“그래, 공부 열심히 해. 그렇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 알겠지?”

“응, 엄마. 그런데 우리가 맨날 멈춰 서던 그 그림 기억나? 추상화, 아마 폴록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아, 맞아! 네가 그 그림 정말 좋아했지. 그런데 제목이 기억이 안 나네…”

“괜찮아, 언젠가 찾아볼게. 어쨌든, 나 가봐야 해서 나중에 또 연락할게.”

“뉴욕에서 조심해, 얼! 잘 자. i love you” 어머니는 전화기 너머로 뽀뽀 소리를 냈다.

“나도. 엄마,” 나는 머뭇거렸다.

“왜, 뭐야?”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 무엇보다도 다시 한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싶었다. 둘이서, 먼지와 기름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오는 고요한 흰 전시실을 걷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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